나트랑에서의 1년은 내게 눈이 시릴 만큼 깊은 바다의 색이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도시의 공기 속엔 무거운 더위와 희미한 소금기가 섞여, 내 피부에 파고드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땐, 나를 감싸던 해안의 바람이 참 따뜻하고 낯설게 다가왔었지만, 지금은 그저 무미건조한 공기처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나의 하루는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감정을 함께 머금고 있다.
출근길, 매일 아침 습관처럼 바라보는 바다와 푸른 하늘은 한편으로 차갑게 아름답지만, 그 푸른 물살 속에 자신을 비춰 보며 고요히 외로운 감정이 스며드는 걸 느낀다.
이곳에 와서 얻은 것은 안정감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를 잃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카지노에서의 일은 흥미롭지만 한편으로 고된 반복이다.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칩과 눈빛 속에서, 나는 감정이 고갈된 채 미소를 유지해야 한다.
휴일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엔 ‘이번엔 무언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피어난다.
그러나 현실은 늘 같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부터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며 시작된 하루,
나의 일상은 다시 천천히 반복되었다.
조용히 일어나 창밖을 보며 나 자신에게 속삭이듯 "오늘은 다를까?"라고 묻는다.
아침은 호텔 로비의 식당에서 혼자 아침을 먹으며 보낸다.
신선한 과일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내게 주어지지만,
무언가 텅 빈 공허가 나를 사로잡는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채워지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같은 아침을 삼킨다.
카드 한 장, 한 장을 뒤집는 행위처럼 나의 하루는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오후엔 가까운 해변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나는 바다 가까이 다가가며 서늘한 물살에 발을 담그고, 마치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짧은 순간, 바다는 모든 걸 잊게 해준다.
수많은 이들이 스쳐가고, 나 역시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바다 앞에서 난 오히려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낀다.
파도 소리는 나를 깊이 감싸 안고, 그 속에서 나는 잠시 현실을 잊고 있는다.
해변가를 지나며 작고 오래된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어 간다. 혼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무언가를 찾아 이 도시에 왔지만, 나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떠도는 존재들이다.
나 역시 이곳에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왔지만, 결국엔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얻었는가, 아니면 단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가.
저녁이 되면 해가 저물어가며 하늘은 붉게 물들고, 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카지노에서 수많은 빛이 반짝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탄식이 얽힌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내가 일하는 카지노는 그 어느 곳보다도 치열한 감정이 오고 가는 곳이다.
테이블을 마주한 사람들의 눈빛 속엔 간절함과 절망이 교차하고,
나는 그들을 마주하며 감정 없이 미소 짓는다.
그곳에서 난 단지 일개 직원일 뿐이지만, 그들의 희비를 함께 느끼는 것이 내겐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짐처럼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 바다 옆을 지날 때 다시 한 번 바다를 본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푸름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를 변화시켰을까,
아니면 그저 그대로 멈춰버린 것일까.
가슴 속에서 작은 물결이 일렁이는 기분이 들면서도,
나는 그 물결에 몸을 맡길 용기가 없다. 내일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을 알기에,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 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 다시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며 해변을 거닐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저 그들과 같이 어두운 밤을 밝히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밝으면서도 잔인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내가 누구인지 잃어가고 있다.